여름 폭염을 식히겠다며 서울 도심에 공원을 만들었다. 홍수를 막겠다며 습지를 복원했다. 누가 봐도 좋은 일 같다. 그런데 막상 공원이 들어서고 나면, 그 혜택을 가장 먼저 누려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먼저 쫓겨난다. 이 불편한 역설을 KAIST가 세계 최초로 데이터로 증명했다.
① KAIST, 세계 최초 '기후적응 역설' 실증 — Nature Cities 게재
KAIST AI미래학과 김승겸 교수팀은 북경대·뉴욕상하이대와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아프리카 32개국 221개 도시권 내 5,503개 지역사회를 20년(2005~2024)에 걸쳐 추적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도시·기후 분야 최고 권위지인 Nature Cities에 게재됐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그린-블루 적응(Green-Blue Adaptation)' — 즉 공원 조성, 습지 복원, 도시 녹지 확충 같은 자연 기반 기후적응 전략이다. 홍수와 폭염 피해를 줄이는 대표적 처방으로 각국 정부가 앞다퉈 도입 중인 바로 그 정책이다.
"기후적응 시설이 조성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종합 젠트리피케이션 지수가 평균 약 41% 상승했고, 주택가격은 약 13% 올랐다." — KAIST AI미래학과 김승겸 교수팀, Nature Cities (2026.05)
즉, 기후 위기에서 시민을 보호하려는 선한 정책이, 역설적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의 주거 불안을 심화시키고 기존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기후적응의 역설(Climate Adaptation Paradox)'이라 명명했다.
📊 기후적응 인프라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 (KAIST·Nature Cities, 2026)
평균 상승폭
평균 상승
(2005~2024)
젠트리피케이션 지수 변화: 조성 지역 vs 비조성 지역
② 왜 공원이 사람을 쫓아낼까? — 메커니즘 해부
이 역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순서를 따라가면 이렇다. 도심에 공원이나 습지가 조성되면 쾌적성·안전성이 높아져 외부 자본과 중산층이 유입된다. 수요가 몰리면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 집값과 임대료 상승은 원래 그 동네에 살던 저소득층을 버티지 못하게 만든다. '환경 개선→주거 비용 상승→원주민 강제 이주'의 흐름이다.
이를 학계에서는 '녹지 젠트리피케이션(Green Gentrification)'이라 부른다.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기후 대책의 피해자가 되는 구조다.
③ "한국도 예외 아니다" — 청계천·서울숲·한강의 그늘
이 문제가 먼 아프리카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사례는 이미 오래됐다. 2005년 청계천 복원 이후 인근 상권과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청계천변의 영세 공업사·노점상 수만 명이 강제 이주했다. 서울숲 조성 후 성수동 일대 집값은 불과 몇 년 새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한강변 공원화 사업 인근의 영등포·마포 쪽방촌 주민들도 같은 압력을 받고 있다.
2026년 현재, 정부는 '기후적응 도시' 조성 명목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 수조 원 규모의 그린 인프라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100GW, 도시 녹지 확충, 탄소중립 생태공원 — 모두 필요한 사업이지만, 주거 안전망 없이 진행될 경우 '기후 대책이 새로운 도시 불평등의 엔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 한국 '녹지 젠트리피케이션' 주요 사례 연표
④ 기후는 평등하지 않다 — 숫자로 보는 기후 불평등
폭염을 예로 들어 보자. 2026년 5월 중순, 서울 낮 최고기온이 31도를 넘어서는 동안 강남구 아파트 주민은 에어컨을 틀면 그만이다. 하지만 중구 쪽방촌 노인은 전기요금이 두려워 선풍기조차 켜기 망설인다. 같은 도시, 같은 열돔 아래서도 폭염 피해는 철저히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기상청은 2026년 한국 연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70%로 예측했다. 폭염·열대야가 잦아질수록 에어컨 전기료, 의료비 부담은 저소득층에게 더 가혹하다. 기후 변화의 원인을 가장 적게 제공했지만, 피해는 가장 크게 받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기후 대책마저 그들의 집을 빼앗는다면, 이것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다.
📊 기후 위기 취약성 지표 비교 (저소득층 vs 고소득층)
⑤ 숨겨진 이면 — 개발이익은 누가 챙기나
공원이 생겨 집값이 오르면 그 개발이익은 어디로 갈까. 답은 간단하다. 토지 소유자와 건물주에게 간다.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 녹지가, 민간 자산 증식의 도구가 된다. 공공은 비용을 지불하고, 이익은 사유화되는 구조다.
한국에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하다. OECD 회원국 중 토지 소유 불평등도 최상위권인 한국에서, 녹지 개발이익은 이미 불평등한 자산 구조를 더욱 심화시킨다. 청계천 복원 이후 인근 토지의 공시지가는 10년 만에 4~5배 뛰었다. 그 혜택은 소수 지주에게 집중됐고, 수만 명의 영세 상인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KAIST 연구진은 이에 대해 "기후적응 정책은 인프라 구축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 정의의 문제"라고 못 박았다. 녹지 조성만큼이나 개발이익 환수, 공공주택 공급, 토지 소유권 보호가 기후 정책의 필수 요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⑥ 나에게 어떤 영향이? — 세입자·무주택자가 주목해야 할 것들
이 문제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서울·수도권에 임대료를 내며 사는 세입자라면 더욱 그렇다. 거주 동네에 공원이나 친환경 인프라가 들어선다는 공고가 뜰 때, 반가워하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나는 과연 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여기에 머물 수 있을까?"
집값이 오르면 세입자에게 가장 먼저 그 압박이 돌아온다. 전월세 계약 만료 시 집주인이 가격을 올리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주변 환경 개선'이다. 기후 대책의 혜택이 물처럼 아래로 흐르지 않고, 자본처럼 위로만 흐른다면 — 세입자와 무주택자는 기후 정책의 피해자가 된다.
⑦ 전망과 행동 제언 — 환경 정의 없이는 기후 정의도 없다
2026년,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기후 대책이 옳은 방향으로 가려면, 단순히 녹지를 늘리고 탄소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KAIST 연구진이 제언한 것처럼, 기후 정책에는 반드시 사회 정의의 렌즈가 함께 적용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녹지 조성으로 발생하는 개발이익 환수세 신설 ▲기후 취약 지역 원주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 ▲기후적응 인프라 계획 단계에서의 세입자·저소득층 참여 보장 ▲쪽방촌·고시원 주민을 위한 냉방·이주 지원 강화 등이 필요하다.
기후는 선택받은 자만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 공원이 누군가를 쫓아내서는 안 된다. 녹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게 진짜 기후 정의다.
"기후적응 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으려면, 토지·주거 안정 대책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환경 정의 없이는 기후 정의도 없다." — KAIST 김승겸 교수팀 정책 제언, Nature Cities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