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명문대를 졸업한 이모(27) 씨는 2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대기업 공채 시즌마다 지원서를 수십 통 넣지만, 서류 합격 통보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엔 '묻지 마 지원'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이젠 공채 공고 자체가 없어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2026년 3월 기준, 주요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는 전년 동월 대비 45% 감소했다. 교육·출판 업종은 무려 –90%, IT·통신은 –73%, 판매·유통은 –69%다.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업종에서 채용이 동시다발적으로 붕괴하고 있다.
통계가 확인해준다. 2026년 1월 기준 '그냥 쉬었다'고 답한 인구는 278만 4000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대. 20대만 44만 2000명으로, 2021년 이후 최고치다. 청년들이 취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당하고 있다.
출처: 진학사 캐치 공채 전수 집계, 한국데이터경제신문 (2026.3)
2019년 현대차, LG가 정기 공채를 폐지하며 시작된 '수시채용 전환'이 2026년에 이르러 완전히 시장을 장악했다. 현재 신입 채용 기업의 81.8%가 수시 채용 방식을 활용하며, 정기 공채 비중은 18.9%에 불과하다.
기업 측 논리는 간단하다. "직무 중심 인재를 적기에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냉정한 계산이 있다. 수시·프로젝트형 채용은 기업 입장에서 고용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인건비 고정비용을 줄이는 수단이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에 따르면, 2026년 대기업의 신규 채용 중 정규직 비중이 20% 이하로 급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고용 통계상 30~40대와 60세 이상 고용률은 오히려 개선되고 있다. 20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시에 무너지는 이례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감소 속도가 인구 감소율(-3.5%)의 2배를 넘긴다는 점이 더욱 섬뜩하다.
2026년 2월 기준, 20대 정규직 근로자는 192만 9000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200만 명 선이 붕괴됐다. 같은 시기 20대 비정규직 비율은 43.1%로 역대 최대다. 20대 임금근로자 두 명 중 한 명 가까이가 비정규직이라는 의미다.
"스펙을 쌓으려고 비정규직에 들어갔는데, 비정규직 경력은 정규직 채용에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악순환이에요."
— 구직자 커뮤니티 익명 게시글 중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쉬었음'을 택한 20대도 44만 2000명으로 급증했다. 한국은행 이슈노트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 상태로 전환했다고 분석한다. 노동시장 재진입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이미 취업을 포기한 게 아니라, 포기를 학습한 것이다.
청년 고용률은 22개월째 하락 중이다. 실업률은 7.7%로 전년 대비 0.7%포인트 상승했다. 취업자는 14만 6000명이 줄었다. 이 숫자들이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 지금 이 순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수십만 청년의 삶이 그 안에 들어있다.
부모 세대와 달리, 지금의 20대는 입사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세대다. 한때 '어느 회사를 갈까'를 고민하던 세대가, 이제 '취업이 가능한가'를 고민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30년까지 AI로 인해 92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지만 1억 7000만 개 신규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문제는 사라지는 일자리와 생기는 일자리의 업종·스킬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전환 기간'의 고통은 오롯이 청년 세대가 짊어진다.
정부는 'AI+역량 업UP 프로젝트'를 통해 15만 명에게 AI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 구직촉진수당을 월 50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이는 구조적 일자리 감소에 대응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의 청년 노동시장은 지금 구조적 전환기에 놓여있다. 공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얻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 변화를 먼저 읽는 사람이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