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6년 1월, 수도권 한 IT 중견기업에 '금요일 오후 1시 퇴근'이 공지됐다. 사내 게시판은 순식간에 댓글로 덮였다. "드디어 우리 회사도 문명에 편입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 회사는 정부의 '워라밸+4.5 프로젝트'에 1호 신청 기업이었다. 노사 합의로 실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단축하는 대신, 정부로부터 직원 1인당 매월 60만원을 6개월간 지원받았다. 신규 채용까지 얹은 덕에 일부 인원에 대해서는 월 80만원까지 수령했다.
그러나 같은 주, 서울 강서구 한 물류센터의 40대 야간 분류 작업자는 이 뉴스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4.5일제? 우리는 일요일도 새벽 3시까지 분류해야 해요. 누가 우리한테 그 돈 주나" 그의 말은 농담 같지만 구조를 정확히 관통한다. 정부가 324억원짜리 선물상자를 풀었지만, 그 상자는 '노사 합의가 가능하고', '교대제가 아니며', '정규직 비율이 높은 회사'에만 열린다.
정부가 2026년 주 4.5일제 시범사업에 배정한 예산은 약 324억원이다. 기업 규모와 유형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진다.
총 편성액은 고용노동부 '워라밸+4.5 프로젝트' 276억원과 기획재정부 관련 예산을 합쳐 약 324억원 수준으로 집계된다. 경기도는 별도로 도 차원 시범사업을 운영하며, 참여 기업은 채용 지원금이 10배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설문 결과, 직장인 응답자의 78%가 주 4.5일제 도입에 찬성했다. 반대는 14%에 그쳤다. 찬반 비율로만 보면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주 4.5일제를 경험해 본 직장인 중 52%가 "생산성이 오히려 증가했다"고 답했다. 이는 워라밸이 '놀기'가 아니라 '효율'이라는 국제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그러나 찬성률의 이면에는 뚜렷한 균열이 있다. 주 52시간 이하로 일하는 그룹의 찬성률은 80%를 넘지만, 주 60시간 이상 고강도 노동 집단일수록 '내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냉소를 보인다. 즉, 가장 이 제도가 절실한 사람들일수록 '그림의 떡'이라고 여기는 역설이 생긴다.
정부는 "중소기업도 똑같이 지원받는다"고 홍보하지만, 실제 현장의 셈법은 다르다.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현실은 세 가지다.
첫째, 대체인력 구인난. 주 4.5일제를 도입하려면 누군가는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구인난이 겹친 상태라, 월 80만원을 준다 해도 인력 자체가 오지 않는다. 지방 중소기업일수록 이 문제가 심각하다.
둘째, 유연근무 인프라 부재. 스마트 근태관리, 원격근무 시스템, 업무 디지털화 등 기본 인프라가 없는 영세 사업장에서는 4.5일제 자체가 운용 불가능하다. 정부가 인프라 구축비의 80%를 지원한다 해도, 나머지 20%가 당장의 매출에 타격을 준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셋째, 6개월 뒤의 막막함. 지원은 6개월~1년짜리다. 지원이 끝난 뒤에도 같은 임금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봉제업체 대표는 "지원금 끊기면 결국 임금을 깎거나 주 5일로 돌아가야 한다. 차라리 시작을 안 한다"고 털어놓았다.
자유기업원·한국노동연구원 등 서로 다른 입장의 연구기관들이 공통적으로 경고하는 지점. 주 4.5일제가 대기업·화이트칼라 중심으로 확산될 경우, 한국 노동시장의 '좋은 일자리-나쁜 일자리' 격차는 시간 차원에서도 더 벌어진다. 임금 격차에 이어 시간 격차까지 생기는 셈이다.
주 4일제 실험의 원조 격인 아이슬란드는 2015~2019년 노동인구의 1.5%인 2,500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 시범을 실시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극적이었다. 노동생산성 연 성장률이 1.7%→3.8%로 오히려 두 배 이상 뛰었고, 번아웃·스트레스는 현저히 감소했다. 현재 아이슬란드 노동자의 약 85%가 주 4일 근무 혜택을 받는다.
벨기에는 2022년 세계 최초로 주 4일제 '청구권'을 법제화했다. 주 40시간을 유지하되 4일로 압축해 일할 권리를 개별 근로자에게 준 것이다. 핵심은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법적 권리로 보장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근로시간을 현재의 1,872시간에서 1,717시간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OECD 평균(1,742시간) 아래로 내려가겠다는 야심찬 목표다. 하지만 이 목표를 시범사업+지원금이라는 한시적 수단만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 브리핑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논점이 하나 있다. "임금 감소 없이"라는 전제 조건이다. 시범사업 요건은 '임금 동결 또는 증가'를 전제로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기본급은 유지하되 성과급·수당을 축소'하는 편법이 논의되고 있다. 총 보수 기준으로 보면 실질 임금이 깎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또한 '실근로시간 단축'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 대기업은 이미 포괄임금제·유연근로제를 통해 서류상 근로시간과 실근로시간이 다른 경우가 많다. 포괄임금제로 연장근로수당이 월급에 포함되어 있던 사무직의 경우, 주 4.5일제 도입이 '서류상 시간 줄이기'에 그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노동계에서 나온다.
🏢 대기업·중견기업 사무직 (수혜 확률 높음)
노조와 인사팀이 합의하면 2026년 하반기부터 격주 금요일 반일 근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주당 최대 4시간이 확보되는 셈이며,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200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긴다.
🏭 중소 제조업 정규직 (조건부 수혜)
회사가 신청 의지가 있더라도 인력 구조상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지원금이 종료되는 6개월 뒤 원상복귀되는 '요요 현상'에 주의해야 한다.
🛒 서비스·유통·외식업 종사자 (사각지대)
매출이 곧 인력인 구조상 주 4.5일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타 업종의 금요일 오후 퇴근이 늘수록 주말 소비·외식 수요가 증가하면서 노동 강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 간호·요양·돌봄 필수노동자 (역풍 위험)
24시간 운영이 필수인 직역은 주 4.5일제의 직접 수혜는 어렵지만, 타 업종 근로시간 단축으로 가족돌봄 부담이 되려 이들에게 몰릴 가능성이 있다.
🚚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완전 사각지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라이더·대리기사·보험설계사 등은 지원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2026년 한국 노동시장에서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는 약 220만명으로 추산된다.
시범사업이 '대기업의 복지 강화'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전문가들은 세 가지를 지목한다.
① 교대근무·필수노동자를 위한 별도 트랙. 지금의 지원금 구조는 일반 사무직을 전제한다. 병원·물류·제조의 교대근무자에게는 '지원금'이 아니라 충분한 인력 확충을 위한 공공투자가 필요하다.
② 포괄임금제 손질. 주 4.5일제와 포괄임금제가 공존하는 한, 시간 단축은 서류 위에서만 이뤄진다. 포괄임금제 전면 재검토 없이는 '형식적 근로시간 단축'에 머물 수밖에 없다.
③ 법제화 로드맵. 벨기에처럼 근로자의 청구권으로 전환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다. 기업이 신청하면 지원하는 방식에서, 근로자가 요구하면 제공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사각지대가 좁혀진다.
1.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인사팀에 '주 4.5일제 시범사업 참여 여부'를 정식으로 문의해보자. 공공기관 업무보고와 지자체 공고에 모두 올라와 있으므로 회사가 "몰랐다"고 답하면 그 자체가 문제의 신호다.
2.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는 별도의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내 회사 소재지가 해당되는지 지자체 일자리재단 공고를 확인하자.
3. 노조가 있다면 2026년 하반기 단체협상에서 '실근로시간 단축'을 의제에 포함시키도록 요청할 수 있다.
4. 노조가 없다면, 동료들과 함께 근로자대표를 선출해 사측과 협의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근로기준법 제24조 등에 따라 근로자대표의 서면 합의는 법적 효력을 가진다.
주 4.5일제는 좋은 제도의 출발점이지만, 지금의 설계만으로는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오히려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 324억원이라는 돈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결국 '시간 주권'을 이미 어느 정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진짜 전선은 '금요일 반나절 퇴근'이 아니라 '누가 이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