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계약 만료 후엔 전세 매물이 없어서요. 반전세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서울 노원구에서 2년마다 같은 동네를 맴돌던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지난달 공인중개사에게 이 말을 들었다. 전세보증금 2억 5천만 원으로 살던 그에게 집주인이 제시한 조건은 '보증금 1억, 월세 75만 원'. 계산해보니 기존보다 매달 62만 원이 더 나가는 셈이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주거비만 연 740만 원 늘었어요."
이것은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6년 4월, 서울의 전세 매물은 3만 건 아래로 붕괴했다. 1년 전 2만 8천 건이던 것이 약 40% 감소했고, 2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에 가깝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월세다. 서울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반전세 포함) 비중은 9개월 연속 60%대를 기록 중이다.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 한국 주거의 근간이었던 '전세'가 사라지고 있다.
월세 거래 비중
(2025년~현재)
1년 전 대비 감소율
(2026년 4월)
아파트 입주 물량
전년 대비 감소
전세,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만의 제도가 무너지는 이유
'전세'는 세입자가 집값의 50~80%에 해당하는 큰 목돈(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그 대신 2년간 집을 빌려 쓰다가 계약 만료 시 전액 돌려받는 구조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 특유의 주거 문화다.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자본이 부족했던 집주인들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굴려 수익을 냈고, 세입자는 월세 없이 목돈만으로 서울에서 살 수 있었다. '세입자와 집주인의 공생 계약'이었다.
그런데 그 공생이 깨지고 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저금리 시대의 끝, 전세사기의 폭발, 보증 제도의 붕괴, 집주인의 이해관계 역전, 그리고 입주 물량의 급감. 이 다섯 개의 칼이 동시에 전세 시장을 난도질하고 있다.
숫자로 보는 전세 소멸의 현주소
한국부동산원 통계와 시장 분석에 따르면, 2026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약 21만 가구로 전년 대비 25% 급감한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신규 입주는 약 11만 가구에 그쳐 평년의 절반 수준이다. 착공이 줄었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가 지연됐고, 정비사업은 갈수록 더뎌지고 있다. 집은 없는데 세입자는 늘어나니 전세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전세 가격 전망도 어둡다. 주택산업연구원은 2026년 서울 전세 가격이 4.7%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 전망(2%)의 두 배 이상이다. 사는 것보다 빌리는 것이 더 빠르게 비싸지고 있다. 지난해 평균 임대보증금 증가액은 2,793만 원으로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 전세 비중은 2019년 62% → 2026년 38%로 역전. 불과 7년 사이의 구조적 전환.
대부분의 기사가 말하지 않는 것 — 집주인은 왜 월세로 갈아탔나
전세 월세화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뉴스는 세입자의 피해만을 부각한다. 그런데 이 현상이 이토록 빠르게 진행된 배경에는 집주인의 '합리적 선택'이 있다. 그 핵심 숫자가 바로 전월세전환율 6.5%다.
전월세전환율이란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수익률이다. 2024년 11월 기준 이 전환율은 6.5%다. 반면 시중 은행의 예금 금리는 3~4% 수준이다. 집주인 입장에서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받아 은행에 맡기면 4% 이자를 받는다. 그런데 그 돈을 월세로 받으면 법적으로 6.5%를 요구할 수 있다. 당연히 월세가 더 '남는 장사'다.
여기에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문제가 겹쳤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는 전세사기 피해가 늘면서 보증 가입 심사를 대폭 강화했다. 최근 보증 거절 건수는 2,890건으로, 2020년(2,187건) 대비 32.1% 증가했다. 보증 가입이 거절된 집은 세입자가 꺼리게 되고, 집주인은 "차라리 월세 받겠다"고 돌아선다. 전세사기 때문에 도입한 규제가 역설적으로 전세 시장을 더 빠르게 소멸시키는 구조다.
나는 얼마를 더 내야 하나 — 연령대·상황별 영향
* 전월세전환율 공식: (전세보증금 차액 × 전환율) ÷ 12. 현재 법정 상한선 6.5% 기준. 연간 추가 부담: 660만~1,056만 원.
| 대상 | 현실 영향 |
|---|---|
| 20~30대 직장인 |
생애 첫 독립 혹은 결혼 초반에 전세 입성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전세대출 이자 부담도 높아 반전세로 유입. 가처분 소득 직격탄. 수도권 외곽·월세 시장으로 이탈 증가. |
| 30~40대 무주택자 |
갱신 만료 후 같은 조건으로 재계약 불가 케이스 속출. 보증금 낮추고 월세 올리는 조건을 수용하거나, 서울 외곽·경기도로 이주 압박. '탈서울 현상' 심화. |
| 50대 은퇴 준비층 |
전세보증금이 사실상 노후 자금이기도 한 이 세대. 전세사기 우려로 보증금 안전성 불안. 노후 자산 전략 재편 필요. |
| 자영업자· 저소득층 |
신용 점수나 소득 조건이 맞지 않아 월세 대출도 어려운 상황. 공공임대 대기 수요 급증. 주거 취약계층 확대. |
이제 어떻게 될까 — 전망과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
단기적으로는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2026년 서울 신규 입주 물량이 25% 줄어든 상태에서, 수요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서울 전세 가격은 4.7% 추가 상승이 전망되고, 노원·강북 등 비(非)강남권도 예외가 아니다. '전세가 싼 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중기적으로는 정부의 공급 정책이 핵심 변수다. 재개발·재건축이 속도를 내거나 신규 공공임대 물량이 대거 공급된다면 시장이 숨을 쉴 수 있다. 하지만 착공부터 입주까지 평균 4~5년이 걸리는 주택 시장의 특성상, 2028년 전에 대규모 공급 해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독자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 📋계약 만료 6개월 전 갱신 의사를 집주인에게 명확히 통보하라. 계약갱신청구권(1회)을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행사를 검토할 것.
- 🔒전세로 이사하는 경우, HUG·HF·SGI 중 본인 조건에 맞는 전세보증보험에 반드시 가입하라. 보험 미가입 전세는 전세사기의 먹이가 된다.
- 💰반전세 전환 협상 시 전월세전환율 계산기(부동산원 공식 제공)로 법정 한도 내 월세인지 직접 확인하라. 집주인이 임의로 올릴 수 없다.
- 🏢LH·SH 공공임대 및 청년 전세임대(LH가 집을 대신 계약해주는 제도) 신청 자격을 지금 확인하라. 소득 기준이 완화됐고 물량이 늘었다.
- 📰국토교통부의 '주거안정 정책 총정리' 공식 자료(korea.kr)와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전월세 동향을 즐겨찾기하고 월 1회 이상 확인하라.